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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눈오는소리 2021. 4. 5 - 4. 11
작성자 원종오 (ip:)
  • 평점 0점  
  • 작성일 2021-06-15 09:4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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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122

[ 눈오는소리 2021. 4. 5 (월) ]


#이유와 목적


이유를 알고 목적이 분명하면 계속 힘이 붙는다.


왜 하는지도 모르면서 하는 일은 금방 지칩니다. 

이유를 알고 하는 일도 그 이유가 사라지면 더 이상 나아가기 어렵습니다. 

이유는 목적과 통해 있습니다. 

전체 코스를 구간별로 나누어보듯, 

단계별 중간 목표를 가지면서 끝이 없는 궁극 목적을 지닌다면 늘 탄력 있는 삶이 될 것입니다. 

뿌리 깊이 내린 궁극 목적을 지니게 되는 일은 간단하지 않지만 그만큼 중요하고 필요한 일일 겁니다. 

혹시 어떤 궁극 목적을 지니고 계신가요?


[ 눈오는소리 2021. 4. 6 (화) ]


#정상


산의 정상은 하나지만 정상에서 아래로 뻗은 길은 무수히 많다.


‘진리는 무수히 많다’는 말은, 

산의 정상과 그 정상에서 아래로 펼쳐진 무수한 길을 떠올려보시면 이해에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정상을 진리라고 할 때, 그 많은 길들이 모두 같은 정상에서 시작되고 서로 통해 있어서, 

산의 정상만이 아니라 그 아래로 뻗은 모든 길이 진리가 되는 이치입니다. 

비록 사람과 길이 달라도, 누구나 그리고 어떤 길로 오르든 정상과 만나게 됩니다.


[ 눈오는소리 2021. 4. 7 (수) ]


#독한 사람(?)


오래된 습관 하나를 내려놓을 수 있겠는가?


술이나 담배를 끊는 사람을 독한 사람이라고 부르곤 했습니다. 

시간은 만들 수 없으므로, 새로 무언가를 하기 위해선 기존에 하던 것을 그만두거나 조정해야 합니다. 

기존의 것을 그대로 하면서 새로운 것을 하면 조만간 지쳐서 멈추게 되는 까닭입니다. 

삶을 바꾸는 건 우선 순위를 바꾸는 겁니다. 

우선 순위를 바꾸는 건 삶이 유한하다는 깨달음에서 가능합니다. 

습관을 바꾸는 사람은 독한 사람이 아니라 절실한 사람입니다.


[ 눈오는소리 2021. 4. 8 (목) ]


#감수성


비가 내릴 때 조만간 맑게 갤 하늘을 떠올릴 수 있는가?


비 오는 날이면 정겨운 친구와 빈대떡에 막걸리를 기울이던 때가 기억나고, 

질퍽한 연병장에서 축구 하던 군대 시절도 떠오릅니다. 

분위기에 젖어 드는 예민한 감수성은 그 자체로 축복 일 수 있습니다. 

중심을 잡는다는 건, 감수성을 억압하거나 느낌에서 달아나는 게 아니라, 

느낌이 더욱 아름답고 풍부하게 드러나도록 깨어있는 걸 말합니다. 

어떤 상황도 살아갈 힘을 얻는 계기가 될 수 있음을 알아가는 겁니다.


[ 눈오는소리 2021. 4. 9 (금) ]


#거리 두기


친한 생각일수록 거리 두기가 필요하다.


코로나로 인해 ‘거리 두기’란 말이 일상어가 되어버렸습니다. 

‘친한 생각’은 의심 없이 받아들여지는 생각이고 나의 판단과 행동의 기준이 됩니다. 

그 생각은 과거의 경험에서 생겨났고, 세상은 계속 변화하므로, 

과거의 눈으로 현재를 판단하는 셈입니다. 

한때 성공한 사람이 그 성공했던 방식을 고집하여 기울게 되고, 

계속 방식을 바꿔가며 도전한 사람이 끝내 성공하는 이유입니다. 

몸 이상으로 생각의 거리 두기가 중요할 것 같습니다.


[ 눈오는소리 2021. 4. 10 (토) ]


#강점과 약점


다른 것이 강점이고, 같은 것이 약점이다.


우리는 모두 다르게 태어났지만, 

표준을 정해서 표준에 가까운 것이 정상이고 먼 것은 비정상이라고 여기게 만들었습니다. 

개성을 감추고 표준을 향해 모두가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만들었습니다. 

모두가 행복해지는 건 비현실적이고 불가능하다는 생각까지 심어왔습니다. 

서로 다른 점을 존중하고 키워주는 것, 모두가 마음 깊은 곳에서 바라는 바 아닐까요? 

그런 사람이 늘어나면서 현실이 되는 것 아닐까요?


[ 눈오는소리 2021. 4. 11 (일) ]


#삶과 죽음


죽고 나서야 죽음이 뭔지 안다면 그것이 삶에 무슨 도움이 될까?


‘삶도 모르는데 죽음을 어찌 알겠는가?’라고 말합니다. 

어떻게 살지를 모를 수는 있어도, 자신이 살아있음을 누구나 압니다. 

죽어서도 어떻게 죽음을 이어가야 할지 모를 뿐 죽어있음은 알지 않을까요? 

살아있음을 ‘아는 것’과 죽어있음을 ‘아는 것’, 그 ‘아는 것’은 영원하지 않을까요? 

몸이 죽어야 죽음을 알 수 있고 몸을 얻어야 삶을 알 수 있다는 건, 

삶을 왜곡시키는 오래된 고정관념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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