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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월간 눈오는소리(제31호) <톨스토이 '인생독본'_August> 주요내용
작성자 원종오 (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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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일 2024-01-31 11:5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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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49

< 20240101(월) >


 

자유는 자유가 아니라 진리를 찾을 때 얻어진다.

자유는 목적이 아니라 결과가 될 수 있을 뿐이다.

 

(8월 1일)

 

자기 마음대로 사는 게 불가능함을 체험하면서, 

자유와 방종을 구분할 수 있는 지혜가 생깁니다. 

진리를 알아보는 눈이란, 

주어진 상황에서 선악을 구분할 수 있는 역량입니다. 

악의 씨앗을 뿌리면서 선의 열매를 원하는 것이 무지이며 방종입니다. 

삶이 고통스럽다면, 

무지와 방종에서 아직 지혜와 자유로 나아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 20240103(수) >

 

 

인간이 정신적 존재이고

육체는 그 존재가 잠시 머무는 곳이라면

죽음은 하나의 변화일 뿐이다.

 

(8월 2일)

 

죽음을 존재의 변화 과정으로 인식하게 되면, 

긴 호흡으로 역사를 바라볼 수 있게 되고, 

우주와 나의 관계를 탐색하게 되며, 

육체를 훌륭한 수단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됩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옅어 지면서 

삶을 보다 충만하고 값지게 만들어 갈 수 있게 됩니다.

 

< 20240105(금) >

 

 

남에게 하는 일은 곧 자신에게 하는 일이다.

남에게 베푸는 자비는 자기 안의 선을 느끼게 하고,

잔인한 행위는 자기 안의 악을 느끼게 한다.

 

(8월 3일 루시 맬러리)

 

모든 일은 ‘내 마음’ 안에서 일어납니다. 

어떤 존재도 자기 마음 밖으로 나갈 수 없습니다. 

자기 마음 안에서,

나와 남, 안과 밖 등을 구분하여 자기 삶의 이야기를 만들어 갑니다. 

이런 까닭에 누구나 ‘주인’이지만, 

이러한 이치를 깨달은 진정한 주인과 

상황과 운명에 종속된 노예같은 주인이 있습니다.

 

< 20240108(월) >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대의 행복,

가장 완전한 자유와 행복의 경지는

자기부정과 사랑이다.

 

(8월 4일)

 

전체에서 나온 개체는 자연스럽게 분리의식과 이기심을 갖게 됩니다. 

‘자기부정’이란 분리의식에 사로잡힌 ‘에고’를 내려놓고 전체의식을 회복하는 일입니다. 

깨달음이란 한 개체가 전체에서 잠시 분리된 상황을 이해하는 것이고, 

수행이란 전체의 균형과 조화에 스스로를 점차 맞추어 가는 일입니다. 

불가에서는 이를 ‘돈오’와 ‘점수’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 20240110(수) >

 

 

진정한 덕행은 결코 자신의 그림자,

즉 명성을 돌아보지 않는다.

 

(8월 7일 괴테)

 

보이지 않는 하늘의 ‘도(道)’가 인간을 통해 드러날 때 ‘덕(德)’이라 불리곤 합니다. 

하늘은 전체가 한 생명인 자리로 개체의식이 없습니다. 

우리가 어떤 선행을 할 때, 

자신을 고려하지 않는 순수한 마음을 지닐 때만이 진정한 덕행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덕행이란 깊은 자기성찰과 곧은 수신을 통해서 가능한 일이란 것을 새깁니다.

 

< 20240112(금) >

 

 

생각이 모든 것의 근원이다.

자기완성에서 중요한 것은 생각의 활동이다.

 

(8월 9일)

 

우리에게는 ‘의식적 생각’과 ‘무의식적 생각’이 있습니다. 

의식이 빙산의 수면 위에 있는 부분이라면 무의식은 수면 아래의 거대한 부분에 비유됩니다. 

우리가 잘 변하지 않는 것처럼 여겨지는 까닭은 무의식이 지배하는 부분이 거대하기 때문입니다. 

자기완성이란, 의식의 빛으로 무의식을 끈기 있게 바로잡아가는 과정입니다.

 

< 20240115(월) >

 

 

가장 중요한 때는 지금이다.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관계 맺고 있는 사람이다.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그 사람과 서로 사랑하는 일이다.

 

(8월 10일)

 

우리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별도로 있다고 여기지만, 

모든 것이 지금 마음에서 짓는 일이라 보면, 

과거라고 부르는 ‘지금’, 현재라고 부르는 ‘지금’ 그리고 미래라고 부르는 ‘지금’이 있을 뿐입니다. 

몸을 갖고 3차원의 세계를 살아가는 여정에 있지만, 

가끔 이런 엉뚱한(?) 생각이 삶에 빛을 줄 수 있습니다.

 

< 20240117(수) >

 

 

삶이 위대하거나 큰 기쁨이 아니라면

당신은 길을 잃은 것이다.

 

(8월 15일)

 

길을 잃었다는 건, 샘이 그 원천과 끊어진 것 또는 나무가 뿌리가 뽑힌 것에 비유됩니다. 

우리 개인에게는 하나인 전체 생명과 이어져 있음을 알지 못하고

분리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시기가 

바로 길을 잃은 때입니다. 

그러나 그 사실을 알든 모르든, 

어느 누구도 전체 생명과 끊어진 적이 단 한 순간도 없음을 가슴에 새깁니다.

 

< 20240119(금) >

 

 

선량함은 영혼의 본성이다.

선량하지 않다면 기만이나 유혹이나 정욕에 굴복해

본성이 파괴된 것이다.

 

(8월 17일)

 

본성은 파괴되어 없어질 수 없습니다. 

다만, 무지한 에고가 균형과 조화에 어긋나게 자기만을 위하면서 

본성이 없어진 것처럼 여겨질 뿐입니다. 

누구나 반성을 통해 본성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성인 중에 과거에 악인이 아니었던 사람은 한 명도 없었으며, 

이것이 반성과 용서를 놓아서는 안되는 까닭입니다.

 

< 20240122(월) >

 

 

선을 행할 때는 사람을 고르지 마라.

그 사람이 당신의 선행을 잊더라도

선행은 사라지지 않는다.

 

(8월 19일)

 

나에게 잘해주는 사람에게는 친절할 수 있지만, 

함부로 하는 사람에게는 친절하기 어렵습니다. 

좋은 일에는 웃을 수 있지만, 

힘든 상황에서 평정심을 회복하고 나아가 미소를 머금기는 어렵습니다. 

운명의 도구가 아닌 주인이 된다는 건, 

모든 사람과 상황을 성장을 위한 하늘의 배려로 알고 감사하는 마음을 내는 일입니다.

 

< 20240124(수) >

 

 

당신 안에 살고 당신과 하나인 지고의 정신은

당신이 행하는 모든 선과 악을 관찰하고 있다.

 

(8월 23일 마누법전)

 

자식이란 부모와 같은 어른으로 성장하는 과정에 있는 존재입니다. 

우주 또는 하늘은 ‘부모’를 상징하고, 그 안의 개체인 우리 각자는 ‘자식’을 상징합니다. 

우리가 ‘행위자’이면서 동시에 ‘관찰자’가 될 수 있는 건, 

‘부모’와 ‘자식’의 속성을 모두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돌아온 탕자’는 이러한 관계와 과정의 멋진 비유입니다.

 

< 20240126(금) >

 

 

눈에 띄지는 않지만

사랑의 합일에 기초한 신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

인류는 끊임없이 나아가고 있다.

 

(8월 24일)

 

우주는 완벽합니다. 

완벽하다는 건, 법칙이 예외없이 지켜진다는 의미입니다. 

‘하늘은 인자하지 않다’는 말은 법칙이 엄격하게 지켜지는 모습의 비유적 표현입니다. 

작은 자아에 갇혀 있는 우리 수준에서 완벽하지 않게 보일 뿐입니다. 

우리가 겪는 고통도 큰 사랑이 발현되는 과정의 하나로 이해할 수 있다면 삶이 좀 더 밝아질 수 있을 겁니다.

 

< 20240129(월) >

 

 

자연은 멈추지 않고 움직이면서

온갖 나태함을 벌한다.

 

(8월 25일 괴테)

 

‘나태함’ 이란, 단순히 게으른 태도만이 아니라, 

성장하려는 의지를 내려놓고 안정을 추구하는 모든 모습을 가리킵니다. 

보통 ‘도입기-성장기-성숙기-쇠퇴기’로 표현되는 4단계의 주기는, 

어느 시기에 나태함이 들어서는지 알려줍니다. 

‘성숙기’에 열매를 쌓아 두지 말고 

그 열매를 다시 씨앗으로 뿌리라고 

자연은 말없이 외치고 있습니다.

 

< 20240131(수) >

 

 

정의는 정의를 향한 지향이 아니라

사랑에 의해 실현된다.

 

(8월 26일)

 

사랑에 의해 인도되지 못한 정의는 ‘복수’의 순환에 빠지게 됩니다. 

치우친 것을 바로 잡아 균형을 추구하는 정의가, 

정각 12시에만 시침과 분침이 하나가 되는 시계처럼 

순간의 균형에 그치고 다시 불균형이 계속되는 까닭은, 

사랑이 아닌 미움으로 정의를 실현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정의가 복수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선, 

참으로 어렵고 힘든 일이지만, 

자기 마음에서 사랑을 회복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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