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눈오는소리 2018. 1. 29 (월) ]
질서는 항상 뒤쪽을 바라본다.
(프로이트)
질서는 일의 과정을 해석하여 매뉴얼을 만드는 것입니다.
정리하는 것이며 안정을 추구하는 것이지요.
질서의 반대는 무엇일까요? ‘창조’입니다.
질서와 창조의 변증법(정-반-합)적 진행이 바로 우주의 운행 질서(메타적 질서)입니다.
‘소우주’인 우리 개인의 삶도 이와 같습니다.
이 법칙에 눈뜨고 이 법칙을 자기 삶에 초대할 때, 운명을 넘어설 수 있게 됩니다.
[ 눈오는소리 2018. 1. 30 (화) ]
거지의 사랑을 받게 된 사람이야말로 군주 중의 군주이다.
(칼린 지브란)
어떻게 하면 거지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을까요?
그에게 필요한 음식과 옷 그리고 집을 주면 될까요?
마땅히 그가 필요로 하는 것을 주어야 하지요.
하지만 그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그를 사랑하는 마음이 꼭 함께해야 합니다.
동질의 것은 동질의 것에만 공명하기 때문입니다.
[ 눈오는소리 2018. 1. 31 (수) ]
속 있는 성과를 얻으려면 한 걸음 한 걸음이 힘차고 충실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단테)
한 걸음 한 걸음이 힘차고 충실 하려면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자신이 부끄럽지 않게 살고 있다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자신의 걸음에 힘이 없거나 충실하지 못하다면 먼저 내면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 눈오는소리 2018. 2. 1 (목) ]
문제 해결을 위해 한 시간이 주어진다면 55분은 적절한 질문을 고르는 데 쓴다.
(아인슈타인)
질문은 곧 방향 설정입니다.
방향 설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한 것이지요.
그럼 옳은 방향인지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나와 남이 모두 이로운 것’인지를 살펴 보면 됩니다.
[ 눈오는소리 2018. 2. 2 (금) ]
비관론자들은 대개 옳다.
그러나 세상을 바꾸는 자는 낙관론자들이다.
(토머스 프리드먼)
낙관론자가 모두 세상을 바꾸는 것은 아닙니다.
낙관론자라도 이룬 것 없이 한 생을 마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비관론자와 낙관론자의 가장 핵심적인 차이는,
낙관론자만이 시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시도한다고 모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시도하지 않으면 그 어떤 것도 이루어질 수 없지요.
또한 시도하지 않으면 배움도 성장도 없지요.
[ 눈오는소리 2018. 2. 3 (토) ]
독서는 문자의 해독이 아니라 저자의 생각을 이해하는 지적 활동이다.
(다카다 아키노리)
책을 읽거나 말을 들을 때 현재 자신의 수준만큼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해가 안 되어도 대부분 그냥 덮고 지나갑니다.
살아가는데 큰 지장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살아가는데 큰 지장이 있는 문제를 만나는 것은
어쩌면 큰 도약을 이룰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그 문제에 좌절하여 삶을 포기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그 문제를 풀기 위해 애쓰면서 커다란 깨달음과 성장을 이룬 사람도 있습니다.
[ 눈오는소리 2018. 2. 4 (일) ]
문학은 인간의 본질을 묻고, 세계와 일대일로 대결하는 예술이다.
문학은 영화처럼 함께 보는 쟝르가 아니다. 혼자 읽고, 혼자 쓰는 것이다.
(마루야마 겐지)
영혼을 자유롭게 하지 못하면 본질에 다가설 수 없습니다.
‘영혼을 자유롭게 한다’는 것은 주변 사람들이나 직장 그리고 국가에 얽매이지 않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에 얽매이거나 밥그릇에 얽매이거나 보수나 진보에 얽매이면 본질에 다가설 수 없습니다.
역으로, 본질에 다가섰을 때만이, 주변 사람과 직장과 국가를 진정으로 위할 수 있게 됩니다.
(※ ‘얽매이지 않는 것’을 ‘무시하는 것’으로 오해하시지 않길 바랍니다.)